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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삼현파내력도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란 김해김씨 판도판서공 휘관파(版圖判書公 諱管派)의 별칭이며, 판도판서공파란 중조(中祖) 관(管)할아버지께서 조려말에 판도판서(版圖判書)라는 벼슬을 하셨기 때문에 그 이하 자손들을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또는 판도판서공 휘관파(版圖判書公 諱管派)라고 합니다.
조선 정종조에 김해김씨를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하였고 절효공 휘극일(節孝公 諱克一), 탁영공 휘일손(濯纓公 諱馹孫), 삼족당 휘대유(三足堂 諱大有) 등 三人을 가리켜 청도삼현(淸道三賢)이라 칭하였으며 한집안에서 4대(四代)에 걸쳐 3賢人이 났다는 것은 고래(古來)로 매우 드문 일이라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 후손(後孫)들을 삼현파(三賢派)라 불렀던 것입니다.
판도판서공 휘관파(삼현파)는 5세(世;차례) 절효공(節孝公) 휘극일(諱克一)의 6형제로부터 군수공파(諱 建), 집의공파(諱 孟), 한림공파(諱 勇), 진사공파(諱 順), 녹사공파(諱 靭), 진의공파(諱 鉉)등 6개 지파(支派)로 크게 나뉘어져 있으며, 그 외 군수공 휘익파(郡守公諱益派), 통덕랑공 휘무파(通德郞公諱武派) 가 있습니다.
항렬(行列)이란 같은 혈족(血族) 안에서 상하관계(上下關係)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만든 서열로, 시조(始祖) 또는 중조(中祖)로부터의 세수(世數)를 나타낸 것이며, 정해진 글자로 각 항렬을 나타내는 것을 항렬자라 하는데, 몇 대에 걸친 이름(휘)이 미리 세수(世數)에 따라 미리 정하여진 항렬자를 따르고 있을 때, 이를 보고 각파 중조(中祖)의 몇 세손(대손)이 되는지 추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름의 항렬자(돌림자) 정하는 법:
1).五行相生法(오행상생법) : 오행의 근본인 金·水·木·火·土 (금.수.목.화.토)가 포함된 글자를 변으로 하여 앞,뒤 이름자에 번갈아 쓰는 경우인데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쓴다. 2).十干(십간)순서 : 甲,乙,丙,壬,癸(갑,을,병,임,계)를 순차적으로 쓴다. 혹은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주로 쓰는 글자: 甲,乙,丙,寧,茂,範,任,揆)의 천간(天干)을 포함한 글자를 순차적으로 쓴다. 3).十二支(십이지)순서 : 子,丑,寅,戌,亥(자,축,인,술,해)를 순차적으로 쓴다. 혹은 子,丑,寅,卯,辰,巳,午,未,申, 酉,戌,亥의 지지(地支)를 포함한 글자를 순차적으로 쓴다. 4).숫자를 포함시키는 경우 : 일(一: 丙·尤. 一. 懿), 이(二: 宗·重. 元. 恒), 삼(三: 泰. 全. 玉), 사(四: 寧. 澤. 德) 등으로 쓰는 경우.(안동권씨등) 5).천자문 글자순... 6).드문 예이지만 韓山李氏는 3단위 木 . 土 . 水 기준 반복법을 사용한다. 7).기타: 오행과 십간을 병용한 방법, 오행과 숫자를 병용한 방법, 십간과 십이지를 병용한 방법. 30-78 : ㅇ柱(주), ㅇ植(식) 31-79 : 熹(희)ㅇ 32-80 : ㅇ在(재), ㅇ壎(훈) 33-81 : 錡(기)ㅇ, 善(선)ㅇ 34-82 : ㅇ洪(홍) 35-83 : 東(동)ㅇ 36-84 : ㅇ夏(하)
김해김씨 삼현파(판도판서공파)내 한림공파 항렬표 : 20-68 : 鳳(봉) 21-69 : 炳(병) 22-70 : 寧(녕) 23-71 : 成(성) 24-72 : 範(범) 25-73 : 康(강)
金海金氏 三賢派 來歷表
派祖(中祖) 管 版圖判書公(高麗 忠宣王) 왕의 49세 관의 1세 文淑 50세 2세 伉 51세 3세 湑 52세 4세 克一 節孝公 53세 5세 (郡守公)(叅判公)(翰林公)(進士公)(錄事公)(進義公) 健 孟 勇 順 韌 鉉 54세 6세 (執義公) (東窓) (梅軒) (濯纓) 駿孫 驥孫 馹孫 55세 7세 (燕川君) (三足堂) (農隱) 大有 大壯 大畜 大雅 56세 8세 鍊 鑑 錡 釴 鑰 鍠 銑 57세 9세 致遜 致璡 致鳳 58세 10세 1세 彦慶 59세 11세 2세
繼祥 奉祥 奉學 60세 12세 3세
-삼현파 삼현파(三賢派 : 판도판서공파)의 1세조인 김관(金管)은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키는 등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그의 현손(玄孫) 김극일(金克一)은 효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극일의 아들 김맹(金孟)은 세종 때 문과에 올라 집의(執義)를 지냈으며, 밤에 용마(龍馬)의 꿈을 꾸고 세 아들을 낳아 김준손(金駿孫), 김기손(金驥孫), 김일손(金馹孫)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들 3형제가 모두 빼어나서 "김씨삼주(金氏三珠)"로 일컬어졌다.
김일손은 1486년(중종 17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글을 읽고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춘추관(春秋館)의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전라감사(全羅監司)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사초(史草)에 썼다가 그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연산군이 등극하여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공교롭게도 이극돈이 당상관(堂上官)으로 참여하여 사초를 살피게 되니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意帝文 :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글)을 실은 것이 발견되어, 이극돈이 노사신(盧思愼), 윤필상(尹弼商), 한치형(韓致亨) 등과 함께 연산군에게 알려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일손은 권오복(權五福), 권경유(權景裕), 이목(李穆) 등과 함께 참수(斬首) 당하였고,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 :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나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거는 일)되었다. 김일손의 강직한 기개와 재능은 후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중종 때의 영의정(領議政) 남곤(南袞)은 말하기를 "세상에 다시 탁영(濯纓 : 김일손의 호)같은 이가 또 나올 수 있을까. 그의 문장을 물에다 비하면 탁영은 강하(江河)와 같고 나는 개천에 지나지 못하다"라고 김일손의 짧은 생애를 애석하게 여겼다.
삼현의 한 사람인 김대유(金大有)는 김일손의 조카이며 김준손(金駿孫)의 아들이다.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숙부 김일손이 참수당하자 부자가 함께 호남에 유배되었다가 중종 때 풀려나와 평생을 강개한 지절(志節)로 살았으며, 3개월 간의 칠원현감(漆原縣監)을 마지막 벼슬로 사직하고 청도의 운문산(雲門山) 속 삼족당(三足堂)에서 73세로 일생을 마쳤다.
김일손의 증손 김언유(金彦諭)는 고양에 살면서 지극한 효행으로 명망이 높았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여 비(碑)와 병풍, 족자의 글씨를 많이 썼다. 김언유의 아들 김현성(金玄成)은 광해군 때 폐모론에 불참하여 면직되자 청빈하게 여생을 마쳤으며,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그 밖의 인물로는 심하(深河)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경서(金景瑞)와 운서(韻書)를 깊이 연구하여 중국어에 능통했던 김덕승(金德承),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김예직(金禮直), 조선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金弘道)가 유명했고, 충효정려(忠孝旌閭)를 사액(賜額)받은 김진희(金晋熙)와 "해동가요(海東歌謠)"를 남기고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한 김천택(金天澤) 등이 있다.
[계 파]
계파는 금녕군파를 비롯한 148개파가 있으며 김유신의 직계종파인 3개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 경파(京派; 영견, 영서, 영정, 영순) :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한다. - 사군파(四君派; 극조, 완, 여수, 세기) : 목경의 동생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한다. - 삼현파(三賢派; 극일, 일손, 대유) :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한다. |